2025 근로장려금, 지금이 당신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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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근로장려금, 지금이 당신의 기회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받을 수 있나요?” 망설이던  박소영(가명, 42세)  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남편 없이 혼자 두 아이 키우느라,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했거든요.   근로장려금 이라는 게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왠지 어렵고 복잡할 것 같아서 미뤘죠. 그런데 올해는,   딱 5분!   휴대폰으로 신청하고   80만 원 을 받았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작은 희망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근로장려금, 어떤 제도일까요? 이 제도는  ‘성실히 일은 하지만, 생활이 어려운 분들’ 을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에요. 일하는 저소득 가구에게 **현금으로** 지원해주는 제도인데요, 2025년에도 변함없이 많은 분들께  희망의 응원 이 되고 있답니다. 국세청 홈택스 📌 2025 근로장려금 신청 대상은 누구일까요? 가구 유형 에 따라 총 소득 기준이 다릅니다 (단독가구, 홑벌이, 맞벌이) 재산이  2억 원 미만 이면 신청 가능해요 근로·사업·종교인 소득이 있는 분들이라면 가능성이 있어요 📲 신청 방법, 복잡하지 않아요 국세청 홈택스  또는  손택스 앱 을 이용하면 되는데요, 절차도 간단해졌어요. 홈택스 또는 손택스 접속 후 로그인해 주세요 근로·자녀장려금 신청 메뉴 로 이동합니다 자동 불러온 정보를 확인한 뒤, 필요한 항목만 입력하면 끝이에요 신청 완료 후 몇 개월 내에 지급 결정 까지 안내받을 수 있어요 지금 꼭 신청해야 할 이유 ✔️  신청기간은 5월~6월 로 매우 짧아요. ✔️ 몰라서 놓치면 **지급 대상이어도 받을 수 없어요** ✔️ 내 손으로  변화를 만드는 첫걸음 이 될 수도 있답니다. 📖 실제 사례에서 배우는 감동 “신청하고 얼마 안 있어 연락이 왔어요.  ‘입금되었습니다.’  그날, 어린이집 식비도 밀렸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누구든 가능성이 있...

찬양의 힘, 그것은 삶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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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의 힘, 그것은 삶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능력만을 중요하게 여기죠.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찬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힘 이 담겨 있어요. 고요한 새벽, 속삭이듯 부르는 찬양 한 곡이 우리의 지친 마음을 새롭게 만들고, 불안했던 감정조차 평안으로 바꿔주곤 하죠. ■ 찬양은 분위기를 바꾸는 영적인 도구에요 어떤 장소든지 찬양이 울려 퍼지면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껴보셨나요? 마음이 무거운 공간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이 흐르면 그곳은 어느새 천국의 평안이 머무는 자리 로 변하곤 해요. 학교든, 직장이든, 병원이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열어 찬양할 때 그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 가 임하는 걸 느낄 수 있죠. 이것이 바로 찬양의 힘 이에요. ■ 고난 중에도 찬양은 무너지지 않아요 우리는 때때로 인생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되는데요, 그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감사와 찬양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입술을 열어 찬양할 수 있다면 , 우리의 영혼은 다시 일어서게 될 거예요. 사도 바울과 실라 가 감옥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찬양은 상황을 바꾸는 초자연적인 능력 을 지니고 있습니다. ■ 찬양은 우리의 신앙을 살아 있게 해요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고백 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과 고백이 노래 속에 담겨 하나님께 전달되는 거죠. 하루 중 단 5분이라도 조용히 찬양을 불러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생각이 바뀌며, 믿음이 회복되는 걸 체험할 수 있을 거예요. ■ 찬양의 힘은 지금도 흐르고 있어요 우리가 매일 걷는 일상 속에서, 심지어 가장 힘든 시간 속에서도...

"성령을 받으라” – 요한복음 20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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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받으라” – 요한복음 20장 22절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 20:22)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닌 “성령을 받으라” 는 명령이었어요. 이 짧은 구절 속에는 단순한 격려 이상의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무기력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으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셨다는 표현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던 장면을 떠올리게 해요. 그분은 단지 말을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숨결을 불어넣으시며 새로운 영적 질서를 시작하신 겁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하나님의 생기를 다시 품은 존재 가 되었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능력을 얻게 된 거예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동안 많은 것을 경험했는데요, 물 위를 걷는 기적도 보았고, 수많은 병자들의 회복도 목격했죠. 그런데도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조차 확신보다는 두려움이 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들이 변화된 진짜 계기는 바로 성령을 받은 이후 였어요. 믿음은 지식이나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아요.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님의 임재 가 있어야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삶이 새로워지고요, 생각과 감정, 심지어 말투까지 달라지기 시작해요. 죄를 미워하게 되고, 말씀에 민감해지고,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이 생기는 거예요. 성령을 받는다는 건 단순히 교회 안에서의 체험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내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예수님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죠.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을 때는, 이제부터 너희는 하늘의 권세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성령님을 초청할 수 있을까요? 먼저 마음을 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제 안에 임하여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찬송가3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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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무심코 흥얼거리다 보면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찬송이 있어요. 바로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입니다. 얼마나 자주 부르는지 모를 만큼 익숙하고, 들을 때마다 마음 깊이 울림을 주는 곡이에요. 이 찬송을 지은 사람은 미국의 여류 문학가 엘리자벳 프렌티스 라는 분이에요. 그녀는 목회자인 남편과 함께 믿음의 가정을 꾸리며, 두 자녀와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갔답니다. 하지만 전염병이 퍼지던 어느 날, 두 자녀를 한꺼번에 잃는 고통을 겪게 되었어요. 몸이 허약했던 그녀에게 이중의 슬픔은 너무도 무거웠어요. 견디기 힘든 마음은 원망과 불평으로 변했고, 평소 신실하던 그녀의 믿음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죠. 그때 남편 목사님께서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⁹ 건넸다고 해요. “여보, 혹시 아이들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했던 건 아닐까요?” 그 말에 그녀는 멈춰 섰어요.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답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거죠. 그 회개의 자리에서 나온 고백이 바로 이 찬송,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이에요. 세상의 기쁨과 자녀의 존재를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예수님만을 사랑하겠다는 진심을 담아 적은 가사였어요. “내 진정한 소원이 있다면, 오직 내 구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고백했어요. 이전에는 세상의 낙을 기뻐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오직 예수님이 자신의 기쁨이고 소망임을 노래한 것이죠.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이 찬양을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고 해요. 그리고 마지막 남긴 말도,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얼마나 깊은 고백이며, 얼마나 은혜로운 마지막인지요. 이 땅에서의 삶은 짧고 덧없는 시간이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혹시 나도 모르게 세상의 즐거움이나 사람, 혹은 내 소유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진 않은지...

나를 살리소서, 나를 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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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살리소서,나를 건지소서 시편 119편의 마지막 부분을 묵상하다 보면, 어느 한 사람의 절절한 고백이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져요. 고난과 핍박, 그리고 거짓된 자들의 압박 속에서 시인은 오직 한 가지를 붙들고 있었어요.  그것은 주의 말씀 이었습니다. “ 나를 살리소서 ”라는 간구가 세 번이나, “ 나를 건지소서 ”라는 호소가 한 번 나옵니다.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한 외침인가요? 생명의 끈이 끊어질 듯한 상황에서도, 그는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겠다 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의 조롱이 이어지고, 대적자들의 칼끝 같은 말이 마음을 찌를 때, 우리라면 무엇을 붙들 수 있을까요? 시편 기자는 대답하듯 말해요. “내가 주의 증거들을 묵상합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마음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오직 하나님 말씀 안에 있었던 거예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진리를 따르려는 마음이 왜 이렇게 힘든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죠. 하지만 말씀은 말합니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요, 주의 의로운 규례는 영원하다.” (시 119:160) 이 진리는 잠시 반짝이는 세상의 유행과는 달라요. 흔들리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달라져도, 늘 동일하게 우리를 붙잡아 주는 생명의 말씀이에요. 눈물이 흐를 때도 있었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시인은 주의 긍휼을 의지하며 말합니다. “ 나를 살려주소서 .” 그건 단지 몸이 사는 걸 의미하지 않았어요. 그 깊은 고백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바라는절규였던 것입니다.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거짓된 말에 상처받을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럴 때마다, 시인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그 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있는 자리에 거하면 마음이 다시 살아나요. 눈물 속에서도 소망이 피어나요. 고통 중에...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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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20)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포도주를 당신의 보혈 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우리 죄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 을 깊이 나타내는 표현이에요. 포도주는 예로부터 생명과 기쁨, 축복을 의미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축복의 상징을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 으로 바꾸셨어요. 우리가 마시는 포도주는 이제 그리스도의 피를 떠올리게 하고, 우리가 받은 용서와 은혜 를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포도주의 붉은 빛, 그 안에 담긴 은혜 붉은 포도주의 색깔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피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계약의 피 였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어야 했지만, 예수님의 피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온 인류의 죄를 덮는 능력 을 지녔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 은 이렇게 말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죄사함에 반드시 희생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전한 제물로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 우리에게 영원한 속죄를 선물하셨어요. 우리가 포도주를 마실 때 기억해야 할 것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받을 때 우리는 단지 의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우리를 위한 희생 을 기억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분의 피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죠.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이 보혈의 은혜를 묵상해야 합니다.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고, 사랑받은 자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보혈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어요. 포도주의 영적 의미, 그리고 오늘의 ...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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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에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사야 56:7, 마가복음 11:17 말씀) 사람들은 종종 묻곤 합니다. “왜 꼭 교회에 가야 하나요?” 그저 예배만 드리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사실 교회는 하나님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장소 기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1.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예요 기도는 단순한 말의 나열이 아니에요. 내면의 진심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소중한 대화 입니다. 마음속 아픔이나 소망, 작은 감정 하나까지도 그분 앞에 쏟아놓을 수 있어요. 우리가 주님을 찾기만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답니다. 2. 교회는 기도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공간이에요 기도하는 교회는 살아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던 이유도,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죠. 지금도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예요. 교회는 그런 기도가 계속 이어지는 거룩한 마당 입니다. 3. 눈물을 감출 필요 없는 안전한 피난처 세상 속에서는 감정을 숨기며 살아야 할 때가 많죠. 하지만 교회는 울어도 괜찮은 곳 기도 중에 흐르는 눈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향기 입니다. 4. 회복의 문은 기도에서 열립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는 소원을 비는 행위다”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기도는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옮기는 시간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도 하죠.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다시 일어설 힘이 솟아나요. 5. 누구나 올 수 있는 열린 집, 교회입니다 ‘만민’이라는 단어는 참 따뜻하지 않나요? 누구든지, 어디에서 왔든지 이 집에 들어올 수 있어요.  과거가 어떠하든, 상처가 있든, 믿음이 아직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초대하세요. 교회는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든 공간 입니다. 6.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고 계세요 지금 마음이 무겁고 복잡하신가요? 괜찮...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 약속을 믿는 인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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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 약속을 믿는 인내의 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사도행전 1:4)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분명히 당부하셨어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그리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분은 제자들이 자신들의 판단이나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때 를 기다리기를 바라셨던 거예요. 왜 떠나고 싶을까요? 우리도 살면서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고, 지금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말이에요. 당시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위협의 장소 였고, 불안과 공포가 짙게 깔린 곳이었죠. 하지만 예수님은 떠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자리에 머물러야만 받을 수 있는 것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령의 약속 이었는데요, 이 약속은 제자들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욕구와 본능까지 통제하게 하는 능력이었어요. 욕구를 넘어서는 순종 사람은 기본적인 욕구에 민감해요. 먹고 자고, 안전을 확보하려는 본능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욕구에 이끌려 움직이기보다, 믿음으로 기다리기를 원하세요.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거죠. 성령님이 오시면 내 안에 있는 불안과 욕망조차 잠잠해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인데요, 순종의 결과로 주어지는 은혜예요. 기도하며 기다리는 시간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에요. 오히려 가장 능동적인 믿음의 행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 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떠나지 않았고, 움직이지 않았으며, 오직 기도했어요. 그 기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일치되도록 준비하는 시간 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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