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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대로 호흡하게 하소서 – 조용히 읊조리는 은혜의 시간

  주의 말씀대로 호흡하게 하소서 – 조용히 읊조리는 은혜의 시간 “하나님, 오늘도 말씀으로 숨 쉬게 하소서.” 이 고백은 어느 날 아침, 문득 가슴에서 터져 나왔어요. 어지럽고 분주한 세상 속에서, 마음 한 켠이 마르게 느껴질 때, 저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늘 하던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기보다, 오늘은 조용히 성경을 펼쳤어요. 그때 눈에 들어온 말씀은 시편 119:23 이었습니다.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으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읊조렸나이다.” (시편 119:23) 순간, 가슴이 찡했어요. 세상의 소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율례를 읊조리는 조용한 기도 였다는 사실이 떠올랐거든요. 비방과 오해가 가득한 세상에서도, 그분의 말씀은 나를 지켜주는 은혜의 숨결이 되었답니다. 삶은 때로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순간이 많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꺾이고, 하루가 휘청거릴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속으로 말씀을 읊조립니다. “주의 율례는 나의 기쁨이요, 나의 평안입니다.” 이렇게 작은 소리로 말씀을 되새기면, 불안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무기력함 속에서 신앙조차 멀게만 느껴졌던 그는, 시편 말씀을 붙잡고 매일 작은 소리로 읽기 시작했대요. 출근길,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조용히 속삭였죠. “주의 율례는 나의 노래입니다.” 놀랍게도, 말씀을 읊조리는 그 짧은 순간들이 쌓여가며, 그의 마음은 다시 살아났고, 표정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말씀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우리 내면을 숨 쉬게 하는 생명의 호흡 이 되었던 거예요. “주의 말씀대로 호흡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거창하지 않지만, 우리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열쇠가 되기도 해요.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조용히 말씀을 읊조리면, ...

설교를 그렇게 많이 듣는데, 왜 내 삶은 그대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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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그렇게 많이 듣는데, 왜 내 삶은 그대로일까요? 매주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넘치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어떤 날은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글썽일 때도 있죠. "이번 주부터는 정말 다르게 살아봐야지!" 하고 결심하며 예배당 문을 나섰던 적, 누구나 한 번쯤 있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어때요?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말씀의 감동은 사라지고 ,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으셨나요? ■ 왜 우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 걸까요? 사실 듣는 것과 살아내는 것 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에서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어요.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반드시 실천하는 자가 되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우리는 설교를 통해 귀로는 수없이 많은 은혜와 지식을 쌓고 있는데요, 그 말씀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알고만 있다고 건강해지진 않죠. 직접 몸을 움직이고 실천할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오는 거예요. 신앙생활도 똑같아요. 수많은 설교를 듣고, 성경 지식이 많아져도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게 되는 거죠. ■ 내 마음밭은 어떤 상태인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 를 떠올려 보세요. 같은 말씀이라도, 마음밭이 돌밭이거나 가시덤불이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내 마음이 잠깐의 감동 에만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걱정과 욕심이 말씀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게 필요해요. ■ 변화는 작은 순종에서 시작돼요 삶을 바꾸는 일은 거대한 결단이 아니라, 작...

예수님의 부활, 도마 사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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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부활, 도마 사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실일까요? 그저 이야기 속 전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도마 사건'은 부활의 실재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장면 이라 할 수 있어요. 도마, 의심으로 가득했던 제자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였던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전했을 때 이렇게 말했죠. "내가 그분의 손에 못자국을 직접 보고, 손가락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습니다." (요 20:25) 이 말은 단순한 부정이 아닌, 당시 모든 이들이 품고 있었던 회의와 불안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 이기도 했어요. 우리 역시 삶 속에서 부활을 진심으로 믿기 어려운 순간이 있잖아요? 8일 후,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셨어요 도마가 그렇게 말한 지 8일이 지난 어느 날,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그분은 도마에게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거라." (요 20:27) 그 순간, 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고백했어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의심하던 도마의 변화, 그것이 진짜 증거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지고 나서야 확신하게 되었죠. 이 사실은 그 어떤 이론이나 논증보다도 부활이 실제임을 강력히 입증하는 증거 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약속이에요. 도...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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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에요.” 이 말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한 절절한 외침이었는데요. 그 시대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런 이들이 여전히 있죠. 그렇다면 정말로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 ■ 모든 믿음이 헛것이 된다면요? 수많은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이유는 뭘까요? 그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소망 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국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도 상관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겠지요. 십자가에서의 희생도, 눈물의 중보기도도, 복음을 위해 흘린 땀방울도… 죽음 앞에서 끝나버리는 인생 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요? ■ 바울이 던진 가슴 저린 한마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19절 이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바울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온 절규 같은 고백 이에요. 부활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견디고 이겨낸 모든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기독교 믿음의 핵심이자 생명이에요. ■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모든 우려가 가정일 뿐이라는 사실이에요. 예수님은 실제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사실은 단지 몇 명의 환상이 아니라, 수많은 증인들이 함께 확인한 역사적 사건이에요. 막달라 마리아를 시작으로 제자들, 그리고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다는 기록은 부활이 단지 믿음의 이야기만이 아닌 실제 사건임을 증명해주는 것 입니다. ...

[고난주간 금요일]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 –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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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금요일]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예수님 –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람이 되셨을까요?” 이 질문은요, 우리 믿음의 뿌리를 되짚게 만드는 아주 깊고 중요한 물음이에요. 오늘은 그 신비하고도 놀라운 복음의 이야기를 함께 묵상해보면 좋겠어요. ■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셨어요 성경의 시작, 창세기 1장을 보면요, “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는 말씀이 나와요. 이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인간을 창조하신 장면인데요, 그 중 성자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셨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셨고, 그분은 바로 말씀이신 하나님 이셨어요. ■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어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배고픔도 느끼시고 눈물도 흘리실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에요. ■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종의 형체로 낮아지셨어요 빌립보서 2장 6~8절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셨는데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종의 모습으로 자기를 비우고 이 땅에 내려오셨어요.** 왜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에요. 죄의 삯은 죽음 인데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그 죽음을 감당하신 거죠. ■ 예수님,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외쳤던 말, 기억하시나요? ...

[고난주간 묵상]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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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sus was 100% God and at the same time 100% human." [고난주간 묵상]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100% 인간이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는요, 단순한 신학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은혜의 복음**이에요. 특히 고난주간을 지나는 지금,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 하나님이신 주님,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 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는데요, 한 아기로 나셔서 연약한 인간의 삶을 직접 살아가셨어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그분은 기적을 행하신 주님이셨지만, 배고픔과 피곤함, 슬픔과 고통도 경험하셨던 진짜 사람 이셨어요. ■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이신 그분의 고난 예수님은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잖아요? 하지만 우리를 위해 스스로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신 거예요. 그분은 모든 고통을 외면하실 수도 있었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선택하셨어요. 밤새 재판을 받고, 채찍에 맞고,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하시고… 그 고통은 실제였고, 그 아픔은 우리를 향한 진심이었답니다. ■ 왜 그토록 아픈 길을 걸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예요. 바로 우리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이 진리는 정말 감동이에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고난주간을 보내며, 그 사랑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보면 어떨까요? ■ 사람이셨기에 대신하셨고, 하나님이셨기에 구원하셨어요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 우리의 죄를 대신 지...

우리의 질고를 지신 주님 [고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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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 우리의 질고를 지신 주님 "이 땅에서 예수님만큼, 영과 혼과 육으로 고통받으신 분이 또 있을까요?"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를 향한 사랑의 깊이 를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고난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어요. 주님은 우리의 질병과 죄악, 외로움과 버림받음 까지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이사야 53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예수님은 죄 없으셨지만, 죄인인 우리 대신 징계를 받으셨어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께서 대신 감당하신 거죠. 그분은 우리의 질고를 지셨고 , 우리의 슬픔을 짊어지셨습니다 .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 제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상실, 육체의 고통을 넘는 심령의 짓눌림 까지 경험하셨어요.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신 분”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오셔서 굶주림을 경험하셨고, 눈물을 흘리셨고,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 외침 속에는 절대 고독 과 우리 모두의 슬픔 이 담겨 있었어요.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기억하신 사랑 주님은 자신을 조롱하는 무리 앞에서 침묵하셨지만, 옆에 있는 강도에게는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통의 와중에도 한 영혼을 살피시는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한 변하지 않는 언약 이자 영원한 위로 예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해요 고난주간은 단지 한 주간의 행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그 사랑 앞에 무릎 꿇는 시간 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치르신 값,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는 은혜의 주간이죠. “주님, 저의 질고를 대신 지신 그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천국을 생각하며 오늘을 준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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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을 생각하며 오늘을 준비해보세요 우리는 매일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이 세상의 일에 휩쓸려 영원한 삶의 목적지 를 잊어버릴 때가 참 많죠.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우리가 가야 할 진짜 본향 지금 여기서부터 준비되는 삶의 연속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의 처소 분명하고 실제적인 약속 하늘나라 백성답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오늘 하루에도 ‘영원’을 담아보는 거예요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작은 선택 하늘에 쌓이는 보물 “영원을 소망하며 걷는 여정”감사와 의미가 있습니다. 생각속에 영원을 담는것은 늘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살자는것이요, 그 곳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주님이 언제나 계시기에 그렇습니다. 2. 천국은 ‘준비된 자’의 집이에요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등불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으로 미리 준비되어야 해요 겸손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3. 천국 소망은 고난의 시간도 견디게 해줘요 이 세상의 고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면, 아픔 속에서도 위로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소망의 눈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잠시 머물다가는 고향집과 같습니다. 그래서 정이랑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나그네 이요, 천국을 향한 순례자 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집, 그것은 ‘천국’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더 나은 본향 우리가 영원히 거할 집은 하늘나라 눈물도 없고, 아픔도 사라지며, 죽음조차 끝나는 곳, 본향이 진짜 영원히 거할 처소 입니다. 그 곳에는 주님이 계시고 사랑하는 믿음의 선배들, 예수 잘 믿었던 사랑하는가족,친지,친구들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믿음의 묵상] 고향과 본향, 그 차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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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묵상] 고향과 본향, 그 차이를 아시나요?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고향’ 을 찾습니다. 어릴 적 추억이 있고, 부모님이 계셨던 곳, 아직도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그곳. 하지만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본향(本鄕)’ 을 이야기합니다. ■ 고향은 잠시 머무는 땅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웃고 울며 살아갑니다. 그 모든 곳이 우리가 말하는 고향 이죠.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은 말합니다. “저희가 나그네와 행인이라 증거하며 본향을 사모하였도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임시 숙소 로 여겼습니다. 고향은 아름답지만, 결코 영원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 본향은 우리가 돌아갈 영원한 집 본향은 천국 입니다. 이 땅의 삶이 끝난 후, 주님께서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 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은 이렇게 말하죠.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일 뿐, 우리의 진짜 목적지는 하늘나라**라는 사실입니다. ■ 믿음의 선진들도 본향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약속의 땅에 거했지만 여전히 천국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장막에 거하며 “더 나은 도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성”을 바라보았고, 죽음 앞에서도 본향에 대한 소망 을 놓지 않았습니다. ■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우리는 때로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집을 사고, 돈을 벌고, 지위를 쌓으며 안주하려 하죠. 그러나 기억하세요. 이 세상은 영원의 시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고, 그곳엔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도 없는 영원한 평안 이 있습니다. ■ 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히브리서 11장 16절 후반부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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