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운동, 분노를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

이 땅에서 사는것이 기회 입니다. 죽고 나서 그때 예수 잘 믿을걸 땅을 치고 후회한들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지금이 기회 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요일5:1)을 믿는것 입니다. 만일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눈을 뜨었을때 유황불 타오르는 곳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이 예수 잘 믿을 수 있는 기회 입니다. Living on this earth is an opportunity. If you regret after death, thinking, "I should’ve believed in Jesus," and beat your chest in sorrow— it will already be too late. Now is the time. It is the moment to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1 John 5:1). If you were to take your final breath on this earth, and open
요즘 문득, 지금 내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그 답은 의외로 우리 얼굴에 솔직하게 나타난다는 걸 종종 느끼게 돼요.
얼굴 표정은 마음의 창과 같죠. 가정이나 일터,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표정 하나로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억울하거나 분이 올라올 때, 그 감정이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곤 해요.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나 교회 성도들에게 생각지 않게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되는 일도 종종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 집사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순교를 앞둔 상황에서조차,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났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어요.
상상해보세요. 돌에 맞아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천사 같을 수 있을까요? 스데반은 믿음이 충만하고 성령으로 가득 찬 자였기에, 그 순간에도 복음을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완고하고 완강한 유대인들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내 돌을 들어 그를 처형하려 했죠. 그런데 바로 그때,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 장면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 6:15) 그 표현이 참 인상 깊어요.
요즘 뉴스를 보면, 계속해서 전염병, 불안, 전쟁 같은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죠. 그 소식에만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이 되고 맙니다.
결국, 우리가 무엇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마음도, 표정도 변화하게 돼요. 스데반이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얼굴이 천사 같았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의 시선이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 머문다면, 얼굴에는 평안과 생명의 빛이 자연스레 흐르게 될 겁니다.
스데반을 죽이던 현장에서 모든 일을 주도한 사람, 그가 바로 젊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스데반의 마지막 표정을 눈에 담았을 거예요.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랫동안 그의 양심을 두드렸을지도 몰라요. 결국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위대한 사도 바울로 거듭나게 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앞두고, 디모데에게 이런 말을 남겼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는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노라."
여기서 '의의 면류관'은 헬라어로 스테파노스, 곧 스데반의 이름과 같은 단어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스데반을 통해 받은 은혜와 죄책감을 가슴 깊이 간직했을 거예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주님만 바라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백해 보세요. “예수님, 사랑해요. 오늘도 주님만 의지할게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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