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운동, 분노를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

이 땅에서 사는것이 기회 입니다. 죽고 나서 그때 예수 잘 믿을걸 땅을 치고 후회한들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지금이 기회 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요일5:1)을 믿는것 입니다. 만일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눈을 뜨었을때 유황불 타오르는 곳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이 예수 잘 믿을 수 있는 기회 입니다. Living on this earth is an opportunity. If you regret after death, thinking, "I should’ve believed in Jesus," and beat your chest in sorrow— it will already be too late. Now is the time. It is the moment to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1 John 5:1). If you were to take your final breath on this earth, and open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누가 중심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기도하고, 섬기고, 예배드리는 그 모든 행위들 속에서 **주어는 과연 누구일까요?** 혹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요?
빌립보서 3장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런데요, 상황은 기뻐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당시 감옥에 갇혀 있었고, 앞날은 불투명했지요. 그런데도 그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기뻐하십시오! 단, 그 기쁨은 '주 안에서'입니다.”
이는 곧, **기쁨의 주어가 환경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고백**인데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면 가능해지는 것이 참 많아집니다.**
당시 교회에선 할례를 강조하며, 육체적 행위를 통해 구원이 이뤄진다는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어요. 바울은 이런 유대주의자들, 즉 할례파를 강하게 경고하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참된 할례파입니다.” (빌 3:3) 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신자는 외적인 율법의 행위가 아닌,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에 중심을 두는 자들이에요. 예배와 섬김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신 삶, 그게 바로 복음의 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자신도 사실, 유대인으로서 자랑할 조건이 정말 많았죠. 그가 말하길,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고 말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에요.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 그분 안에 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했던 겁니다.
환경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어요. 눈물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시련 중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중심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내가 드리는 예배의 주어는 누구인가요? 내가 하는 헌신과 봉사의 주체는 정말 주님이신가요?** 이 질문은 우리를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자랑이 ‘나’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을 기뻐하는 것, 그리고 그분 안에 사는 것이 **가장 고상한 삶**임을 기억하며 걸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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