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물을 만날 때,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라

쓴물을 만날 때,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쓴물을 마셔야 하는 때 가 찾아옵니다. 예상치 못한 실패, 상실, 질병, 오해, 관계의 단절 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순간들이 있죠. 바로 그 순간이 "마라의 쓴물" 을 만난 때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홍해를 건넌 지 사흘 만에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지만, 마실 수 없는 쓴물 앞에서 절망하며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의 자리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했고, 하나님은 한 나무를 보여주셨습니다.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자, 기적처럼 그 물은 단물로 변했어요. 📍 위기의 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은 단지 고통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그 속에는 기도의 문 이 열려 있고, 회복과 변화의 통로 가 숨겨져 있답니다. 우리가 쓴물을 만났을 때, 그 순간에 원망 대신 기도 를 선택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단물의 은혜 로 응답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 왜 이런 쓴물을 주셨습니까?” 라고 따지지 않았어요. 그는 오히려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해결책을 보여주셨고, 기적은 그 기도의 자리에서 시작 되었답니다. 🌿 “한 나무”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성경의 상징 속에서 “한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를 떠올리게 해요. 우리의 죄와 고통, 쓰라린 인생의 순간들을 십자가에 맡길 때 , 그 고통은 더 이상 우리를 짓누르지 않게 되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 가 찾아오게 되죠. 삶에서 쓴물 같은 고난을 만났다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보세요. 그리고 그 순간에 십자가를 마음속에 던져 보세요.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원망 대신 ...

예배와 헌신의 주어는 누구일까요?

 

■ 예배와 헌신의 주어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누가 중심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기도하고, 섬기고, 예배드리는 그 모든 행위들 속에서 **주어는 과연 누구일까요?** 혹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요?



빌립보서 3장 1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그런데요, 상황은 기뻐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당시 감옥에 갇혀 있었고, 앞날은 불투명했지요. 그런데도 그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기뻐하십시오! 단, 그 기쁨은 '주 안에서'입니다.”

이는 곧, **기쁨의 주어가 환경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고백**인데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면 가능해지는 것이 참 많아집니다.**

■ 진정한 예배자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당시 교회에선 할례를 강조하며, 육체적 행위를 통해 구원이 이뤄진다는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어요. 바울은 이런 유대주의자들, 즉 할례파를 강하게 경고하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참된 할례파입니다.” (빌 3:3) 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신자는 외적인 율법의 행위가 아닌,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에 중심을 두는 자들이에요. 예배와 섬김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신 삶, 그게 바로 복음의 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바울, 자랑할 것이 참 많았던 사람인데요…

바울 자신도 사실, 유대인으로서 자랑할 조건이 정말 많았죠. 그가 말하길,

  • 여드레 만에 받은 할례
  • 이스라엘 백성, 베냐민 지파 출신
  •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 율법에 철저한 바리새인
  •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했던 자
  •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삶
  •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최고의 교육
  •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자
지금식으로 말하자면, 신분, 지식, 열심, 영향력까지 모두 갖춘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고 말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에요.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 그분 안에 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했던 겁니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기쁨

환경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기쁨의 근원이 되신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기뻐할 수 있어요. 눈물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시련 중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중심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내가 드리는 예배의 주어는 누구인가요? 내가 하는 헌신과 봉사의 주체는 정말 주님이신가요?** 이 질문은 우리를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자랑이 ‘나’가 아니라 ‘예수님’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을 기뻐하는 것, 그리고 그분 안에 사는 것이 **가장 고상한 삶**임을 기억하며 걸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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